아픔은 어떻게 길이 되고,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아픔은 어떻게 길이 되고,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쩌면 저의 인생은 1980년 가을, 충청북도 제천의 우체국 창구에서 미국으로 첫 펜팔 편지를 밀어 넣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설득에 못 이겨 큰형의 연탄 배달 트럭 조수가 되어 무보수로 일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미래는 연탄 먼지처럼 뿌옇기만 했습니다. 고단한 노동 속에서, 태평양 건너 날아온 펜팔 친구 케리(Kerry)의 사소하고 평범한 문장들은 제가 알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세계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후 저의 삶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끊임없이 부딪히는 과정이었습니다. 언론계에서 촌지와 착취 구조를 마주하며 청춘의 아픔을 겪었고 , 동료 기자 YM의 비극적인 삶을 목격하며 그녀를 막지 못했다는 깊은 후회를 안고 살았습니다. ‘폭스북’이라는 거대한 꿈이 좌절되었을 때, 저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차가운 족쇄를 실감하며 마침내 가족과 저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국땅으로 향하는 길을 택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펴낸 수필집 『우리 모두 아픈 청춘이었다』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마주했던 아픔과 희망, 후회와 깨달음의 발자국을 더듬어보는 저의 오랜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1980년대를 관통했던 수많은 청춘의 이야기, 언론계의 부조리와 맞서며 아파했던 젊은 기자들, 문경 ‘들풀모임’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던 친구들—그들 모두가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저는 이 책을 쓰는 동안 두 사람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오래전 ‘퀸’에서 만난 허인하, 그리고 멀리서 소식을 전해오던 케리. 한 사람은 제게 ‘위대한’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편지로 저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픈 청춘이었고, 그 아픔을 견디게 한 것은 화려한 신념이 아니라 누군가의 호명(呼名)과 답장(答狀) 같은 작은 온기였습니다.

“아픔은 언제나 길을 만든다”는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처럼, 고통스럽고 부조리했던 시간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픔들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고, 오늘의 우리를 만드는 단단한 길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다음 세대에게는 과거의 아픔이 어떻게 오늘의 길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아픔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되었습니다.

2025년 9월

대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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