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궤적, 연결의 미학: 대하의 『우리 모두 아픈 청춘이었다』에 대한 비평적 독해
2025년 10월 21일 출간 예정인 대하 작가의 수필집 『우리 모두 아픈 청춘이었다』는 단순히 한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미시사를 관통하는 치열한 자기 탐구의 기록이자, 한 시대의 상처와 열망을 담은 초상화이다. 작가는 ‘아픔’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에서 출발하여 ‘우리’라는 공동의 기억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기술과 인간의 미래라는 보편적 성찰에 다다르는 궤적을 밀도 높은 언어로 직조해 낸다.
이 책은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을 거부하고, ‘흔적’, ‘모순’, ‘경계’, ‘배움’, ‘성찰’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적 프리즘을 통해 삶의 파편들을 재구성한다. 이는 과거를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주제의식: 시대를 관통하는 세 개의 축
이 수필집의 주제의식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전개되며,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작가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1. ‘아픔’의 연대기: 개인적 고난과 시대적 부조리의 교차
책의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아픔’은 작품 전체를 흐르는 강물과 같다. 이 아픔은 곤궁했던 10대 시절, 연탄 배달 트럭 조수로 일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개인적 고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작가의 시선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1980년대 한국 언론계에서 마주한 촌지, 강압적 광고 영업, 착취 구조와 같은 사회적 부조리로 확장된다.
특히 동료 기자 YM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기록은 이 ‘아픔’이 단순한 성장통이 아니라, 한 개인이 시대의 구조적 폭력 앞에 얼마나 무력하게 스러져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고발이다. 작가는 “그때 그녀를 선택했다면, 그녀의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지금도 가끔 든다”고 고백하며, 개인의 선택과 시대적 한계 사이의 고뇌를 드러낸다.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시대의 모순을 교차시키며, 작가는 ‘나’의 아픔이 결국 ‘우리 모두’의 아픔이었음을 역설한다
2. ‘인연’의 재발견: 고립을 넘어선 연결의 힘
차가운 부조리와 아픔의 기록 속에서 작가가 발견하는 구원은 다름 아닌 ‘인연’, 즉 인간적 연결이다. 이 책은 수많은 인연의 직물로 짜여 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날아온 펜팔 친구 케리(Kerry)의 편지는 곤궁했던 소년에게 “훨씬 거대한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었고, 레스토랑 매니저였던 허인하 씨는 “생각이 위대했던 녀석”이라 불러주며 그의 잠재력을 긍정했다.
문경의 ‘들풀모임’은 척박한 지역 문화에 연극 공연이라는 불꽃을 피워 올린 청년들의 뜨거운 연대였으며, 21세기프론티어의 ‘skyang’과의 치열했던 논쟁은 비록 대립적이었을지라도 지적 성장을 이끈 중요한 관계였다. 이처럼 작가는 실패와 좌절의 순간마다 자신을 붙들어주고 새로운 길로 이끌었던 인연들을 복원하며, 고립된 개인은 관계를 통해 비로소 구원받고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경계인’의 성찰: 관찰자에서 참여자로, 문학에서 과학으로
작가는 끊임없이 ‘경계’에 서 있는 인물로 자신을 그린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다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물리적 경계를 넘나들었고, 문학(시, 저널리즘)과 기술(데이터베이스, 인터넷 사업, AI)이라는 이질적인 세계의 경계를 탐험했다.
이러한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관찰자의 다리”라는 글에서 양자물리학의 ‘참여적 우주’ 개념과 만나며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단순히 주어진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관찰자의 선택이 세계를 바꾼다”는 원리처럼, 매 순간의 응시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깨닫는다. 펜팔 편지를 부치던 소년의 작은 ‘관찰’ 행위가 그의 삶이라는 우주를 창조한 첫걸음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성찰은 그의 SF 소설 『퀀텀 스톰』의 세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수필과 소설이라는 두 장르를 잇는 지적 가교 역할을 한다.
아픔은 어떻게 별이 되는가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수필집이 탐구하는 핵심 질문은 ‘아픔이 어떻게 별이 되는가’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아픔은 그것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성실하게 ‘기록’하며, 타인과 ‘연결’될 때 비로소 길을 만들고 별이 된다.
- 직시와 기록의 힘: 작가는 자신의 실패(‘폭스북’의 좌절)와 부끄러움(촌지를 받은 기억, 후임에게 재고를 떠넘긴 일)을 미화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박제된 기록이 살아 있는 기억보다 오래간다”는 믿음으로 그것을 언어로 대면한다. 이 행위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객관화하여 미래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연금술과 같다.
- 공감과 연결의 가치: 작가는 자신의 아픔을 개인의 특수한 경험으로 고립시키지 않고, ‘YM’, ‘들풀모임’, ‘skyang’ 등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이를 통해 아픔은 자기 연민을 넘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의 다리가 된다. 이 연결의 과정 속에서 아픔은 더 이상 파괴적인 힘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온기로 승화된다.
결론적으로, 대하 작가의 『우리 모두 아픈 청춘이었다』는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깊이 성찰하고 시대와 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텍스트이다. 그는 아픔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재료를 가지고, 인연이라는 씨실과 성찰이라는 날실을 엮어 한 편의 감동적인 서사를 완성했다. 이 책을 덮는 독자는 비단 작가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흩어져 있던 ‘아픔’의 흔적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그것이 이미 자신만의 길과 별을 만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아픈 청춘이었다 (We Were All Aching Youth)
프롤로그 아픔은 언제나 길을 만든다
제1부: 흔적: 연탄·편지·기억
- 연탄, 펜팔, 그리고 기억 나무
- 이름의 여정
- 집시의 편지: ‘퀸’의 허인하를 기억하다
- 이수역: 과거의 메아리
- 사랑의 발자국
제2부: 모순: 부조리와 불꽃
- 우리 모두 아픈 청춘이었다
- 새재 너머, 불꽃이던 우리들에게
- 말을 씻는 시간: 한 사람의 생애가 시가 될 때
제3부: 경계: 떠남과 선택
- 연희동 사람들
- 천 개의 영화제, 하나의 꿈
- 보라매공원을 건너온 그녀
- 잠자는 여우의 기록: 내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제4부: 배움: 다음 세대와 성장
- 나는 그들에게 다리였을까
- 디지털 얽힘: 베이비몬스터의 시선이 비추는 다음 청춘
- 유치원생이 수학 시험에 떨어진 날
- 너무 늦었다는 거짓말
- 낯선 학교의 따뜻한 배려
- 대기자 1번
- 일요일 오후 1시, 아들이 작가가 되는 시간
- 간절함을 찾아서
- 카톡 링크를 누르지 않는 사람들
제5부: 성찰: 연결과 시간
- 내 소꿉친구, 중산
- 셔터, 기억과 역사를 잇다
- 나비의 인도
- 새도 가끔은 남의 둥지를 그리워한다
- 30분을 위한 25시간
- 두려움을 넘어서
-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 이기는 게임
- 백옥 같은 피부
- 신이 되려는 기계, 혹은 한 작가의 불안한 예감
-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 2017년 여름의 경고
- 분노에서 달관까지
- 관찰자의 다리
- 729권의 시집과 엔트로피의 미학
에필로그 go c21, 그리고 영원한 로그아웃
작가의 말
해설 | 황영주(시인·수필가) 삶의 궤적 그리고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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