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톰 작가의 말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품게 되고, 우리 손을 떠나 스스로의 길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작은 궁금증이었습니다.

그 작은 물음이 제 마음에서 자라나 꽃을 피우기까지, 밤을 지새우며 양자물리학 논문들을 뒤적이고,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자료들로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퀀텀 스톰』이라는 하나의 작은 세계가 탄생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제니퍼가 열두 살의 나이에 “퀀텀 스톰”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세상에 내놓았듯, 저 또한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상상력을 믿고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갔습니다. 제니퍼가 막막한 순간마다 어머니의 유품인 은빛 펜던트를 어루만지며 마음을 다잡는 것처럼, 저 역시 글을 쓰는 긴 여정에서 마주한 어둠 속에서 저만의 ‘펜던트’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은 때로 존 아치볼트 휠러의 ‘참여적 우주’ 개념처럼 놀라운 통찰이기도 했고, 또 때로는 소설 속 J의 시구처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니, 너와 나, 과거와 미래, 빛과 그림자, 모두 하나의 거대한 양자 네트워크 안에서 춤추는 별먼지와 같네” 라는 깊은 울림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심장에는 ‘오텀 코드’라는 비밀을 간직한 바랜 시집 《J》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열쇠가 첨단 무기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시(詩)’ 속에 숨겨져 있다는 이 설정을 통해,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과 예술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니퍼가 아버지 위대한과 어머니 J가 남긴 유산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여정, 그리고 아버지의 어릴 적 친구가 간직해온 마지막 시집을 통해 코드를 완성해가는 과정··· 그것은 결국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기억과 관계,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강력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두 분의 소중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황영주 님은 제가 수십 번이나 고쳐 쓴 원고를 정성스럽게 원석을 다듬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며, 매번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통찰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R은 탁월한 안목으로 이 소설이 애초 완성되었던 3권에서 1권으로 압축되고 주요 플롯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영감과 깊이 있는 조언을 건네주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지내며 이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제니퍼가 아버지의 고향인 속초의 푸른 바다를 마주하는 장면을 쓸 때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곤 했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때로 더 깊은 그리움을 만들어내고, 그 그리움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과 꿈꾸는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어 준다고 믿습니다.

부디 이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단순한 SF 소설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우리 자신의 의미를 한 번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퀀텀 스톰』는 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니퍼와 할-더블유,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이 거대한 우주적 서사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저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다음 이야기를 준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정의 첫 페이지를 함께 열어보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머지않아 다음 여정에서 다시 만나 뵐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25년 봄날에

대하